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트라페준타 제국 (문단 편집) === [[알렉시오스 2세(트라페준타 제국)|알렉시오스 2세]], 전성기 === 요안니스 2세가 사망하자, 그의 아들인 [[알렉시오스 2세(트라페준타 제국)|알렉시오스 2세]] 메가스 콤니노스(1297~1330)가 즉위했다. 그는 14세에 제위에 올라 외삼촌인 동로마 황제 안드로니코스 2세 팔레올로고스의 후견을 받아들였다. 안드로니코스 2세는 동로마 제국의 대신의 딸을 그의 배우자로 낙점하고 있었으나, 알렉시오스는 후견인의 허락도 없이 이베리아(카프카스)의 공주와 혼인해버렸다. 안드로니코스 2세는 총대주교가 이미 공주가 임신했다는 이유로 그 결혼을 인정하자, 그도 그것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안드로니코스 2세의 후견이 끝나자, 그는 유능한 통치자의 면모를 과시하였다. 그는 1302년과 1303년의 전투에서 투르크 족의 침입을 격파하고 그 장군을 포로로 잡았다. 또한, 알렉시오스 2세는 흑해의 상권을 장악한 제노바 인들과도 대립하였다. 당시 제노바 인들은 1261년의 님파이움 조약 이래 베네치아의 개입을 뿌리치고 흑해에 식민지를 구축하는 등 빼어난 활약을 벌이고 있었고 그들은 황제의 명령에 따르기를 공공연히 거부하고 있었다. 1306년, 알렉시오스 2세가 그들의 상거래에 세금을 부과하려 하자 그들은 일제히 퇴거하겠다면서 그를 위협했다. 이에 그는 조지아인 용병대를 거느리고 제노바 상인들을 공격했고 두 나라는 곧 전쟁에 들어갔다. 제노바도, 트라페준타도 이 전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의외로 이 전쟁은 제노바가 잃을 것이 존재한 전쟁이었다. 그들은 어쨌든 트라페준타에서 물건을 들여와 유럽에 물건을 팔아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1314년, 알렉시오스와 제노바가 다시 협상하여 통상 조약을 갱신하면서 두 나라는 다시 평화를 되찾았다. 그러나 알렉시오스는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님을 깨달았고 이에 대한 방안으로 1319년, 그는 제노바 상인과 똑같은 대우를 하는 조건으로 베네치아와도 통상 조약을 맺었다. 이로써 제노바는 한동안은 트라페준타의 상권을 위협할 수 없게 되었다. 제노바와의 문제가 해결 되자, 이제는 시노페의 에미르가 문제거리로 떠올랐다. 시노페의 에미르는 해적단을 고용하여 기독교 상선대를 위협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트라페준타 령을 직접 습격하기도 하는 등 여러가지로 제국의 골칫거리였다. 그는 이에 대비하여 항구에도 성곽을 건설하고 조직적인 경찰 시스템을 구축하여 트라페준타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치하에서 트라페준타는 최고로 발전하여, 영토는 작지만, 부는 웬만한 왕공들을 상회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